출처:아고라경방 공돌이
"너에게 남아있는 왼손으로 총을 다룰 수 있을 거야."
이 말을 들은 타리크는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갈 결심을 합니다.

[ 사브라-샤틸라 학살사건 ]
인류사의 부끄러운 기록 가운데 하나인 사브라-샤틸라 학살사건
(1982년 9월16일)은 이스라엘군의 레바논 침공과 관련이 깊다.
당시 이스라엘 국방장관 아리엘 샤론(전 이스라엘 총리)은 야세르 아라파트를
지도자로 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무장게릴라 세력을 없애겠다고
베이루트를 점령했다. 이스라엘은 기독교 민병대(팔랑헤당) 지도자 바시르
제마엘을 친이스라엘 꼭두각시 정권의 대통령으로 내세우려 했다.
그런데 제마엘이 대통령 취임을 바로 앞두고 폭탄테러로 암살되자,
기독교 민병대원들은 피의 복수를 바랬다. 저녁 무렵 150-200명쯤의
레바논 기독교민병대원(팔랑헤당 무장대원)들이
"팔레스타인 테러분자들을 잡겠다"는 구실을 내세워 난민촌에 들이닥쳤다.
최소한 8백명(팔레스타인 쪽 추정은 3천명)이 죽었고, 희생자 가운데는
어린이들과 부녀자들이 절반을 넘었다.

학살사건이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언론매체를 타고 국제적으로 문제가 되자,
이스라엘 정부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했고, 샤론은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샤론에겐 '전쟁범죄자'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는다.
2001년 희생자 유가족들의 변호인단은 샤론을 벨기에 법정에 고소했었다.
벨기에 국내법이 전쟁범죄에 대한 '보편적 사법권'(universal jurisdiction)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벨기에는 샤론에 대해 사법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싱거운 판결이
내려졌다. 지금껏 그날의 학살 가해자들은 아무도 처벌 받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그 학살사건의 배후에 이스라엘군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기독교 민병대원들은 피의 복수를 바랬다.
이스라엘 국방장관 아리엘 샤론은 '푸른 신호등'을 켜주었다.
레바논 기독교 민병대원들이 팔레스타인 난민촌으로 들어가 학살극을 벌이는 동안,
이스라엘 군대는 국방장관 아리엘 샤론의 명령에 따라 난민촌 외곽을 탱크로
둘러싸고는 밤새도록 조명탄을 쏘아 올려 기독교민병대로 하여금 마음껏
학살을 저지르도록 도왔다.

[ 이슬람주의자들인 헤즈볼라와 하마스 ]
헤즈볼라와 하마스가 내세우는 이슬람주의 운동은 가장 강력한
사회 세력인 ‘모스크’를 중심으로 가난한 주민들을 위한 의료봉사,
사회봉사 등을 통해서 강화되기 때문에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대다수
가난한 대중들의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2006년 현재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은 민주적인 선거를 통하여 민주적인 정부를
구성하였다.. 이슬람주의자들 정당인 헤즈볼라와 하마스가 의회와 내각에
각각 입성한 것을 계기로 아랍 전역에서 반이스라엘, 반미 저항운동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2006년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전쟁에서 미국은
이스라엘을 강력하게 후원하고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화력을
앞세운 야만적인 공격으로 인한 대량 학살의 참상이 중동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면서 중동의 민심은 하마스와 헤즈볼라 편으로 급속히 기울었다.
이제 친미 아랍 정권들조차도 이 민심의 향배를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2006년 7월 26일에 발표된 ‘베이루트 조사정보센터(Beirut Center for Research
and Information)’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레바논인들의 87%가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헤즈볼라의 투쟁을 지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2005년 7월에는 기독교인의 74%가 헤즈볼라의 저항을 지지했었다.

서구 언론들은 레바논이 다종교, 다종파 국가라고 강조하면서
이들 사이에서 권력 투쟁이 전개되면서 내전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경고해왔다.
이렇게 이스라엘과 레바논, 팔레스타인 분쟁에서 종교나 종파를 강조해온
기존의 주장들은 이스라엘에 의해서 ‘점령된 영토’와 ‘추방된 주민’이라는
분쟁의 핵심을 은폐시키는 역할을 한다.
지역 분쟁과 관련된 종교, 종파 논쟁은 팔레스타인인들과 레바논인들과의
영토 분쟁 속에서 이스라엘이 구사해온 ‘분할 지배 전략’이라는 오래된 점령
정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 전쟁에서는 이스라엘이 의도했던 내전과는 정 반대로 레바논인들이
종교와 종파를 넘어서서 헤즈볼라를 중심으로 결집하고 있는 상황이
전개됨으로써, 사실상 이스라엘의 전쟁 프로그램은 이미 실패한 것이다.

[ 저는 여러분이 죽이려는 그 아이입니다 ]
이 편지글은 이라크 소녀 샬롯 앨더브란의 글입니다.
사람들은 이라크에 폭탄을 떨어뜨린다고 하면, 군복을 입은 사담 후세인의
얼굴이나, 총을 들고 있는 검은 콧수염을 기른 군인들이나,
부시 대통령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걸 아세요?
이라크에 살고 있는 2400만 명 중에서 절반 이상이 15세 미만의 어린이라는 걸
. 바로 저와 같은 아이들이요. 저를 한번 보세요.
여러분이 이라크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걸 생각했을 때,
여러분 머릿속에는 제 모습이 떠올라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죽이려는 바로 그 아이입니다.
제가 운이 좋다면, 91년 2월 16일 바그다드의 공습 대피소에 숨어 있다가
여러분이 떨어뜨린 '스마트'폭탄에 살해당한 300명의 아이들처럼 그 자리에서
죽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운이 없다면, 바그다드의 어린이 병원의 '죽음의 병실'에 있는
열네 살 알리처럼 천천히 죽게 될 겁니다.
알리는 걸프전에서 사용한 열화우라늄탄 때문에 악성 림프종이라는
암에 걸렸습니다.
어쩌면 저는 18개월 된 무스타파처럼, 기생충이 장기를 갉아먹는 병에 걸려
손을 써 볼 수도 없이, 그저 고통스럽게 죽어갈 겁니다.
놀랍게도, 무스타파는 단돈 25달라밖에 안 되는 약만 있으면 완전히
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이라크에 취한 경제봉쇄 때문에
이라크에는 약이 없습니다. 어쩌면 저는 또 살만 모하메드처럼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심리적 외상을 안고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살만은 91년 여러분이 이라크를 폭격했을 때 여동생과 함께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아직도 그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공습 사이랜이 울리는
악몽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면 저는 걸프전이 벌어졌던 세 살 때 여러분의 손에 아버지를 잃은
알리처럼, 고아가 될 겁니다. 알리는 3년 동안 매일같이 아버지 무덤에 덮인
먼지를 쓸어내리며 아버지를 찾았습니다.
"아빠, 이제 괜찮아요. 이제 여기서 나오세요. 아빠를 여기에 가둔 사람들은
다 가버렸어요."라고. 하지만 알리는 틀렸어요.
아버지를 가둔 그 사람들이 다시 돌아올 것처럼 보이니까요.
아니면 전 걸프전이 벌어져서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고 늦게까지
밤을 샐 수 있다고 좋아했던 루아이처럼, 아무렇지도 안게 받아들일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루아이는 지금 학교에 갈 수 없어서 길에서
신문을 팔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바로 여러분의 아이들이거나, 조카나 이웃집 아이들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의 아들이 사지가 절단되어서 고통 속에 몸부림치고 있는데도,
아들의 고통을 덜어 줄 수도 없고 편안하게 해줄 수도 없이
그냥 무기력하기만 하다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의 딸이 무너진 건물의 돌 더미에 깔려서 울부짖고 있는데,
구해줄 수 없다고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의 아이들이, 눈앞에서 여러분이 죽는 걸 보고 나서,
굶주린 채 혼자 이 거리 저 거리를 떠돌아다닌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건 액션 영화도 공상 영화도 비디오 게임도 아닙니다.
바로 이라크의 아이들이 처한 현실입니다.

다섯 살 아셈에게 전쟁이 뭐냐고 물었더니, "총과 폭탄에 날씨는 춥거나 덥고,
우리가 불에 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열 살 아에사는 부시 대통령에게 이렇게 전해달라고 말했스니다.
"이라크의 수많은 아이들이 죽을 거예요. 당신이 TV에서 아이들이
죽는 걸 보게 되면 후회할 거예요.
"저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 다른 아이들과 문제가 생기면 때리거나 욕을 하지 말고
대신 '나'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대화를 하라고 배웠습니다. '
나'라는 단어를 사용해 대화를 하면, 상대방이 한 행동을 멈출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에게 그게 '나'라고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나'는 '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라크에 사는 모든 아이들처럼, '우리'는 지금 뭔가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걸
속수무책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계의 다른 아이들처럼, '우리'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고, 그 모든 결과 때문에 고통 받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목소리는 너무 작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우리는 우리가 언제 죽을지 모를 때 두렵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를 죽이려 하거나 다치게 하거나 미래를 훔치려
할 때 화가 납니다. 우리는 내일도 엄마와 아빠가 살아 있기만을 바랄 때
슬퍼집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우리가 뭘 잘못했는지 모를 때 혼란스럽습니다.

[ 참고- 베블런의 '유한게급론']
베블런은 '상류층의 소비구조를 분석하였다
.자본주의 사회의 신판 '귀족'으로군림하는 정치인과 금융자본가, 산업재벌의
소비행태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그들은 서로 경쟁이 되어 합리적인
가치라곤 전혀 없는 고급 미술품과 구식 무기 등을 수집한다.
베블런은 이처럼 비합리적인 방법으로 사리사욕을 추구하던 당시 구미지역의
상류층을 '현대판 약탈자 계층'으로 규정하여 '그들이 자본과 무기를 독점하는
이상 우리 세계에 평화가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지배층의 성격에는 베블런의 이론대로 퇴행적인 면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비생산적인 군비 투자와 국외에서의 대량 살육(전쟁)을
주도하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극우파>
극소수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빈민층의 증가와 사회적 갈등의 악화,
사회적 안정성의 박탈을 강요하는 자본의 전 세계적 공격인 '신자유주의'도
'합리주의'라기 보다 일종의 광기에 가깝다.
탈세,사기, 착취로 가로챈 거액의 돈을 물 쓰듯 낭비하는 파렴치한 정치 장사꾼들,
중세 귀족 못지않게 거드름을 피우며 폭력과 폭언을 일삼는 국회의 선량들,
그들이 보여주는 바합리적인 행태와 교회나 사찰의 의례에 대한 맹신과 맹종.....
베블런의 100년 전에 그토록 준열히 비판했던 미국의 초기,중기
'약탈형'자본주의의 추태는 지금도 한국과 러시아 등지에서 거의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참조>블로그


2008
12.30 이스라엘, 하마스에 전면전 선언
이스라엘 군은 이번 작전이 끝나면 가자지구에는 단 하나의 하마스 관련 건물도 남아있지 않게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파상적인 공습이 계속되면서 하마스의 정신적 상징인 이슬람 대학과
총리 집무실 등 가자지구 주요 시설물들은 불바다가 됐습니다. 폭격으로 300개 이상의 목표물이
파괴되면서 350명 이상이 숨졌고 1,700명 이상이 다쳤습니다. 하마스는 자살폭탄 공격 등
결사항전을 선언하고 이스라엘 남부에 로켓포 수십발을 발사하는 등 저항을 이어갔습니다.
이스라엘 지상군이 투입되면 하마스는 무장병력 만 5,000명이 전면전에 나선다는 계획입니다.
12.19 하마스, 휴전연장거부 및 로켓포 공격개시
06.19 6개월간의 휴전협정체결
2006
08.12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 휴전결의안 채택
이스라엘과 레바논 사이의 휴전 결의안이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에 의해 채택되었으나
이스라엘은 남부 레바논에서 공격을 계속했다. 같은 날 이스라엘은 24명의 군인을 잃었다.
24명의 5군인들은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군의 헬리콥터를 쏘았을 때 죽었다고 한다.
07.13 이스라엘-레바논 전쟁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병사 2명을 납치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 육군이 탱크를 이용하여
레바논의 도시를 공격한 사건이다. 헤즈볼라 측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으며 다수의 아랍 세계
국가들은 이스라엘을 공개적으로 비난하였다. 이스라엘은 연일 레바논 주요거점에 대해 폭격을
개시했으며 이 과정에서 레바논 피난민들이 타고 있던 민간인 버스를 폭파시키는 등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속출하였다. 유럽 국가들은 이스라엘의 레바논 난민 무단 폭격에 대해
비난을 퍼부었다.
06.27 이스라엘, 가자지구 공격 개시
06.25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이스라엘 군인 1명 납치
01. 샤론 이스라엘 총리 뇌출혈,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 집권 성공
2005
08. 이스라엘, 가자/서안지구 유대인 정착촌 절수
2004
11. 아라파트 PA 수반 사망
2003
06.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중동평화 로드맵 합의
2000
09.13 팔레스타인 독립국 선포
1998년 10월 23일 마침내 미국 백악관에서 역사적인 <영토-평화 교환협정>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약속 불이행으로 평화과정은 다시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1999년 11월부터 회담이 재개최되었으나 2000년 2월 정상회담이 결렬되었고 팔레스타인은
9월 13일 독립국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불씨는 그대로 남아있어 항상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09. 샤론 이스라엘 리쿠드당 당수 동예루살렘 방문, 2차 인티파다
1995
11. 라빈 총리 암살
1994
05.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탄생
1993
11. 오슬로 평화협정
09.03 팔레스타인 자치안서명 - 5년간
1967년 중동전 때 이스라엘이 강점한 가자지구 및 요르단강 서안 예리코시에 이후 5년 간 한시적인
팔레스타인의 자치를 실시한다는 것이다. 이 안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은 보건·교육·복지·관광 및
문화 등 5개 행정분야에서만 자치권을 가지며 지역 내 치안을 담당한다. 외교 및 포괄적인
국방권은 계속 이스라엘이 행사한다. 또 견해가 다른 예루살렘 문제, 시리아·요르단 등
인접국가들과의 협상문제는 1995년 12월 이후로 미루었다. 팔레스타인자치안 서명 후 일정은
① 1994년 4월까지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및 예리코시에서 철수하고 팔레스타인 자치행정기구에
권한을 이양한다.
② 1994년 7월까지 팔레스타인은 총선을 실시하고 이스라엘 시민행정기구는 해체한다.
③ 1995년 12월까지 점령지의 항구적인 지위를 규정할 협상을 시작하고 동(東)예루살렘의 지위와
유대인 정착촌의 안전보장을 논의한다. ④ 1998년 12월 13일까지 자치기간을 만료하고,
점령지의 항구적 지위를 확정한다 등의 4단계였다.
1991
10. 미국-소련 주제, 중동평화교섭 시작
미국과 구소련의 공동주최로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중동평화회담을 시작으로 평화교섭이 이어졌다.
이 회담에는 이스라엘과 주변의 여러 아랍국가들이 협상당사자로, 이집트·걸프협력회의(GCC)·
마그레브 3국·국제연합·EC 등이 옵서버 자격으로 참석했다. 회담은 전체회의·쌍무회의·
다국간회의로 나뉘어 진행, 쌍무회의에서는 이스라엘의 점령지문제를, 다국간회의에서는
군축·수자원·환경·경제협력 등 중동지역의 현안을 논의하였다. 모스크바와 워싱턴으로
장소를 바꿔가며 계속 진행된 중동평화회담은 1992년 여름까지는 진전이 없었다.
그 뒤 이스라엘의 점령지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에 대해서 제1단계로
5년의 잠정기간을 두어 자치를 하고 최종적인 지위는 잠정기간 동안 교섭하기로 하는 안이
제기되었는데 이 안은 1993년에 들어와 가시화되었다.
1987
이스라엘, 가자지구 PLO 이스라엘 봉기 강경진압
이스라엘군, 가자지구에서 촉발된 팔레스타인인들의 반이스라엘 봉기, 강경 진압
1985
베이루트 교외에서 PLO 난민-시아파 민병간 무력 충돌
1982
이스라엘, 레바논 침공 및 PLO난민캠프 대량학살 자행
이스라엘, 시나이반도를 전면 반환. 이스라엘군, 레바논 침공 시작. PLO무장부대, 레바논에서 퇴각. 서베이루트의 팔레스타인 난민캠프에서 대량학살 자행. 레바논 내전극화
이스라엘-이집트 평화협정으로 4차중동전쟁 종결
1981
사우디아라비아, 8항목 평화안 제안
1979
이집트·이스라엘 평화조약
이집트는 아랍세계에서 처음으로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그러나 중동평화는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얽혀, 이스라엘과 인접국인 레바논·시리아·요르단 간의 평화교섭 외에도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다. 제4차중동전쟁 이후 세계의 추세는 팔레스타인문제 해결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으나, 이스라엘은 본래부터 팔레스타인국가 설립에 반대하였고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
의 교섭에 대해서도 강경하게 반대하였다. 이스라엘은 1949년 서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고,
1967년 3차중동전쟁으로 동예루살렘을 점령한 뒤 합병하여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정함으로써
국제여론의 비난을 샀다. 또한 1967년 이래 요르단강 서안지구, 가자지구, 골란고원의
점령지에 100개소 이상의 크고 작은 입식지(入植地)를 건설하여 평화의 전망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국제연합은 창설 이래 팔레스타인난민구제활동, 4차례 중동전쟁에서의 정전·평화유지
활동 등 많은 분야에서 중동평화에 관여해왔고, 중동에 깊은 이해관계를 가지는
미국·유럽공동체(EC)도 독자적인 평화안을 기반으로 중동평화를 위해 힘써왔다.
1973
10.05 4차 중동전쟁 발발 - 욤키푸르 전쟁
이집트의 기습선제공격으로 전쟁이 시작됐다. 이날은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축제일인 욤키푸르
(사죄의 날) 이었다. 이집트군의 병력은 75만, 무기들은 탱크 32,000대, 소련제 미사일(SA-6)
까지 총동원해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병력은 이집트군의 3분의 1도 안됐고
무기들도 이집트군의 절반도 안됐다. 개전 48시간 만에 이스라엘은 17개 여단이 전멸되었다.
이때 미국이 이스라엘에게 대대적 지원을 해주었다. 이 욤키푸르 전쟁에선 소련이 35억 달러를
아랍국에 그리고 미국은 22억 달러를 이스라엘에 쏟아부었다. 또한 미국은 30일간정도 포위됬던
이스라엘에 군수물자를 운반하기 위해 무려 5,566번의 비행 수송작전을 펼쳤다. 미국의 지원을
등업은 이스라엘은 반격에 나섰고 비교적 허약한 시리아의 골란 고원을 집중포격했다.
골란 고원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시리아 군 탱크 867대, 차량 3,000대 이상을 파괴했다.
욤키푸르에 일어난 전쟁이라서 욤키푸르 전쟁이라고도 한다.
10. 제4차 중동전쟁
이스라엘, 베이루트에서 PLO 지도자 3명 살해
1972
10. 뭰헨올림픽에서 PLO 게릴라의 이스라엘 숙소 습격
팔레스타인게릴라, 뮌헨올림픽대회에서 이스라엘 선수 숙소를 습격하고 게릴라 석방 요구
1970
미국, <초승달 정전안>제안, 요르단 검은9월단 내전
중동평화 제안으로 미국 국무장관 W.P. 로저스의 신제안인 <초승달정전안>이 나옴. 이집트,
미국의 중동평화 제안 수락. 요르단 정부군, 암만게릴라를 일제히 공격, 내전상태 돌입
(검은 9월단 사건). 나세르 사망
1969
Y.아라파트 PLO 의장취임, 이집트 M.M.카다피 집권
1968
PLO, 요르단 칼라메에서 이스라엘군 격퇴
1967
06.09 이집트-이스라엘간 정전협정
국제연합 안전보장 이사회는 정전 결의로 쌍방의 수락에 의해 6월 9일 정전이 실현되었다.
또한 안전보장이사회는 그해 11월 중동분쟁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결의 242호를 채택하였다
06.05 3차 중동전쟁발발, 이집트-이스라엘 6일전쟁
제2차 중동전쟁 후 1964년경부터 아랍 게릴라의 활동이 시작되어, 게릴라의 기지가 된 시리아에
대해 이스라엘은 1967년 4월 대규모 공격을 감행하였다. 이에 대해 붕괴에 직면한 아랍의
결속강화를 이스라엘과의 대결에서 회복하려는 대통령 나세르는 대군을 시나이반도에 투입,
유엔긴급군의 철수를 요청하고 아카바만(灣)의 봉쇄를 선언하였다.
전란은 시리아 ·요르단으로 확대, 전면적인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이스라엘은 6월 5일에
이스라엘 공군기를 전 출동해 이집트 공군기지를 맹폭격하여 170분에 걸친 폭격 끝에 이집트
전투기 300를 파괴했고 6월 6일에는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 전투기 416대를 파괴해 아랍측
공군력을 괴멸시킨 이스라엘군은 압도적인 우세 속에서 4일 만에 시나이반도를 점령하였으며,
요르단강 서안(西岸)지역, 시리아 국경의 골란고원을 공략하였다.
1964
01.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결성
1958
이집트, 시리아 합방(合邦) 선언
이라크 공화제혁명 발발. 미국군 레바논에 상륙. 영국군 요르단에 진주
1956
10. 2차 중동전쟁 발발 - 시나이 전쟁
이집트 나세르는 소련과 친선 관계를 유지했고 미국과 영국이 아스완 댐 건설 지원 요청을
거절하자 나세르가 수에즈 운하 국유화를 선언하며 수에즈 운하를 점령해 전쟁이 일어났다.
영국과 프랑스가 반발해 공군을 동원해 수에즈를 폭격했고 이스라엘도 동맹을 맺고 이집트
시나이 반도를 침공했다. 하지만 전쟁이 자칫 세계대전으로 번질 위험이 있어 미국과 소련이
압력을 가해 UN의 총회로 3국 군대가 철수하면서 끝이 났다. 아랍권에서는 "삼국 침략"이라고도
부른다.
1952
07. 이집트 나세르의 쿠데타 승리로 집권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가 쿠데타를 일으켜 국왕을 쫓아내고 대통령이 되었다.
1950
이스라엘, 예루살렘을 수도로 선언 요르단, 요르단강 서안 합병. 아랍집단안전보장조약에 조인
1949
02. 이스라엘 승리선언 및 평화 조약 조인
제1차 중동 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이 났다. 이 전쟁을 '이스라엘 독립 전쟁' 이라고도 불린다.
1948
06.11 스웨덴의 중재로 휴전 협상 시작
그 사이 미국의 지원으로 현대적인 전투 군대로 변한 이스라엘군은 모셰 다얀 장군의 지휘 아래
이집트 카이로, 요르단 암만, 시리아 다마스쿠스를 폭격해 승리
05.16 이스라엘-아랍연합국간 1차 중동전쟁 발발
1차 중동 전쟁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이로 인한 팔레스타인 문제로 아랍 연합군과 이스라엘
간에 벌어졌다. 5월 16일에 이집트 전투기들이 이스라엘을 폭격했고 전 아랍이 전쟁 상태에
돌입했다.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등 5개국 아랍 군이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이에 이스라엘 민간들이 부족한 무기들로 싸웠고 20일 넘게 일어난 전투 끝에 결국 유대인들은
예루살렘과 텔아비브를 지켜냈다.
05. 1 이스라엘 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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